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셀로 살라스 (문단 편집) == 클럽 경력 == 살라스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의 유소년팀을 거쳐 1993년, 1군팀에 합류하였고 이때부터 프로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그 25경기 27골을 포함하여 시즌 45경기동안 41골'''이라는 괴랄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칠레 전역에 혜성같이 등장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후에도 팀의 주포로 활약한 살라스는 클럽대항전에서의 활약으로 남미 전역에까지 그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내로라하는 남미의 명문팀들이 그에게 무수한 러브콜을 보낸다. 살라스의 선택지는 [[CA 보카 주니어스]]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손꼽히는 명문구단인 [[리베르 플레이트]]였다. 그의 활약은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도 계속된다. 2시즌동안 팀의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며 1996 후기리그, 1997시즌 전,후기리그 우승을 모두 휩쓰는데 일조했다. 이제 남미무대는 그에게 너무 좁은 무대였고 남미 무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유럽리그로 진출한다. 그리고 다음 무대는 선배 [[이반 사모라노]]가 맹활약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세리에 A]]였다. 1998년 2월 1일, 살라스는 2,1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세리에 A]]의 [[SS 라치오]]로 이적한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2,100만 달러 (당시 한화로 320억원)는 역대 최고 이적료였으니 그만큼 24살의 젊은 공격수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는 대목이다. 그리고 살라스는 자신의 진가를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보여주며 1998-99시즌 [[스쿠데토]], [[코파 이탈리아]], [[UEFA 슈퍼컵]]등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큰 기여를 했고 동시에 라치오의 황금기의 주역이 된다. 또한 팬들은 같은 남미출신 [[호나우두]]가 당시에는 장기 부상 늪에 빠지며 허덕이던 반면에 살라스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남부럽지 않는 활약을 하자 그를 라치오의 아이돌로 섬기기에 이른다. 그렇게 칠레의 차세대 간판스타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2001년, 살라스는 1,200만 달러(당시 한화로 약 145억원)의 이적료에 유고 출신 스트라이커 [[다르코 코바체비치]]를 묶어 교환하는 조건을 통해 [[유벤투스 FC]]에 입성한다. 당시 [[파벨 네드베드]], [[다비드 트레제게]], [[릴리앙 튀랑]],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팀에 한축이 되어줄 것으로 팬들과 보드진들은 기대했으나.. 첫 시즌부터 10월에 당한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먹었고 다음 시즌에도 부상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면서 2시즌간 26경기 4골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만다. 2시즌동안 처참했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AC 밀란]],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아스날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당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스왑딜을 할 생각이었던 [[스포르팅 리스본]][* 그로부터 16년이 지나서야 호날두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까지 많은 유럽팀들이 그에게 제의를 했으나 모두 무산됐고 결과는 그의 친정팀이었던 리베르 플레이트로 임대를 떠나게 된다. 리베르 플레이트에서는 부상의 여파로 예전 전성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2년간 활약한다. 이후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데뷔를 했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로 돌아와 4시즌간 노익장을 과시한 뒤 2008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